음악은 단순한 오락인가, 철학적 질문의 도구인가?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때로는 흥분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음악은 분명히 감성적인 영역에 속한 예술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강력한 철학적 매개체이기도 하다. 고대 철학자들부터 현대 사상가들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음악을 단순히 ‘소리의 예술’로 보지 않고, 존재론적·형이상학적·윤리적 질문의 출발점으로 여겨왔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형태는 없지만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언어가 닿지 못하는 깊은 곳에 다다른다. 과연 이러한 음악은 인간의 본성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그리고 철학은 이 음악이라는 ‘소리의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였을까?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우주의 질서를 따라 울리는 음악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나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 우주 자체의 원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수학적 비율에 따라 구성된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천구의 음악(Musica Universali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별과 행성의 움직임이 일정한 수학적 질서를 따르며, 이 질서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우주의 소리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고는 단순히 음악을 청각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하나의 조화로운 구조임을 보여주는 철학적 모델로 음악을 사용한 것이다.
플라톤 역시 음악을 영혼을 기르는 수단으로 보았다. 그의 저서 『국가』에서는 이상국가의 시민들에게 적절한 음악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음악이 인간의 성품을 형성하고, 영혼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에게 음악은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조화와 이성적 질서를 이끄는 힘이었다. 그는 특정한 리듬과 선율이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음악의 윤리적·교육적 역할을 철저히 규정했다.
이처럼 고대 철학자들에게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존재였다. 그것은 세계의 구조를 상징하며, 인간의 내면을 다듬고 사회의 질서를 지탱하는 철학적 도구였다.
아도르노와 현대철학: 대중음악에 대한 비판적 시선
20세기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음악을 통해 근대 사회와 자본주의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음악을 순수 예술과 대중 음악으로 구분하면서, 대중 음악이 산업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감성을 마비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아도르노는 대중 음악이 정형화된 구조, 반복되는 코드, 예측 가능한 멜로디 등을 통해 청중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음악을 사회구조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로, 음악이 어떻게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대중 음악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인간의 자율성과 사고를 자극하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 음악, 특히 쇤베르크나 바르톡의 실험적 음악을 옹호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음악이 청중에게 사고를 요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음계를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유도한다고 보았다.
그의 사상은 단순히 음악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인의 삶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담고 있다. 즉, 음악은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키거나, 반대로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이중성을 가진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음악의 존재론: 음악은 실재하는가?
음악은 형체가 없다. 손에 잡히지 않고, 공간에 머무르지 않으며, 재현하려 해도 매 순간 다르게 울린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음악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즉,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예술 일반에 대한 논의와도 연결되지만, 특히 음악은 그 비물질성 덕분에 더욱 심화된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
현상학자 로맹 잉겔렌은 음악을 '시간 속에 펼쳐지는 존재'로 보았다. 그는 회화나 조각처럼 공간 속에 고정된 예술과 달리, 음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관점은 음악이 일회성의 예술이며,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진다는 점에 집중한다. 그에 따르면, 음악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예술이며, 바로 그 점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반영한다고 본다.
또한 질 들뢰즈는 음악을 "코드화된 세계를 탈주하는 선율"로 설명한다. 들뢰즈는 음악이 고정된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창출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철학적 해석은 음악을 단지 귀로 듣는 예술이 아니라, 사유와 존재의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짜는 근본적인 도구로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음악은 사유하는 인간의 거울이다
음악은 단순한 감정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철학적 언어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음악을 통해 우주의 조화와 인간의 영혼을 설명했고, 현대의 아도르노는 음악을 통해 사회 비판과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철학자들이 음악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음악을 '존재'와 '의미'에 대한 질문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그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어폰 속 음악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울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음악은 시간 속을 흐르며 인간의 정신을 흔들고, 사유의 문을 연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어쩌면 우리도 모르게 철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악이란 결국,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순수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플라톤, 『국가』(Republic), Book III, V
Guthrie, W.K.C.,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 1
Adorno, T.W., Introduction to the Sociology of Music, Continuum, 1976
Adorno & Horkheimer, Dialectic of Enlightenment, 1944
Ingarden, Roman, The Work of Music and the Problem of Its Identity, 1986
Deleuze &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1980